‘과잉의 시대’...사라지고 버려지는 자원들
소셜벤처 절반이 환경문제 해결 노력
풍족은 다른 말로 낭비다. 기술 발달로 우리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의 시대를 맞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그만큼 사라지는 자원과 버려지는 에너지도 늘어나고 있다. 낭비도 과잉되면 우리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변한다.
이런 낭비를 막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착한 스타트업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과감한 실행력으로 우리 환경을 지키는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 기업 덕에 버려지던 식품 부산물이 밀가루로 변신하기도 하고 학교와 공장 등에서 낭비되던 전력도 크게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무한히 확장될 푸드 업사이클링”...부산물로 대체 밀가루 만드는 리하베스트=43톤. 식품 업사이클링 스타트업인 리하베스트가 창업 후 2년 동안 되살린 식품 부산물 양이다. 리하베스트는 맥주나 식혜를 만들고 남은 맥아부산물을 수거해 곱게 빻아 대체 밀가루로 만든다. 일명 리너지(RE:nerge) 가루다. 이는 영어단어 리사이클링(Recycling)과 에너지(Energy)를 합쳐 만든 단어다.
리너지 가루는 밀가루에 비해 영양분도 풍부하다. 밀가루보다 단백질은 2배 많으면서도 칼로리는 30% 이상 적다. 식이섬유도 21배나 많아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다. 부산물로 만들기 때문에 생산 원가도 밀가루보다 50% 이상 저렴하다.
리너지 가루를 직접 개발한 이는 민명준 리하베스트 대표다. 재미교포 3세로 대학 졸업 후 컨설팅업체에 취직한 뒤 SPC, 다논코리아, 풀무원 등 F&B(식음료) 기업 컨설팅을 주로 맡았다. 그러면서 식품 자원이 선순환되지 못하는 문제를 절감하고 2019년 직접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가 꽂힌 건 식품을 만들고나서 버려지는 부산물이었다. 민 대표는 “창업하고 처음 두달은 식품 공장들을 돌면서 부산물만 찾아다녔다. 착즙 쥬스에 쓰인 당근, 매실부터 건강기능식품에 사용된 홍삼, 뽕잎, 미역줄기 등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고 돌아봤다.
민 대표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한 식혜공장이었다. 식혜를 만들기 위해 보리를 짜고 남은 식혜박들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음식재료이기 때문에 깨끗했다. 심지어 영양성분도 밀가루보다 월등했다. 맥주공장에서 나오는 맥주박도 식혜박과 유사했다.
하지만 큰 걸림돌이 있었다. 식혜와 맥주 부산물이 젖어있어 쉽게 세균이 번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공정 전문가 도움을 받았다. 민 대표는 “반도체 공정 가운데 세척, 분쇄, 건조 과정을 벤치마킹해 리하베스트만의 살균 건조 설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환경을 지키는 취지에 공감한 오비맥주, 카브루 등 맥주업체와 서정쿠킹 같은 식혜업체가 리하베스트와 부산물 제공 계약을 맺었다. 지난 1월에는 리너지가루로 만든 에너지바인 ‘리너지바’를 만들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와디즈에서 판매해 매출 1억원 가량을 거두기도 했다. 민 대표는 투자금을 더 확보하면 시설에 집중 투자해 내년부터는 월 50톤 이상 부산물을 리너지가루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시에 피자, 만두 등 리너지가루를 다양하게 활용한 제품 출시도 준비하고 있다.
국내 맥주와 식혜 부산물은 해마다 약 40여만톤이 발생한다. 민 대표는 “우리나라는 푸드 업사이클링 분야에서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수준이긴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사업 기회도 많다”고 강조했다.
▶“3층 에어컨 꺼주세요” AI가 말해준다...에너지 저감 시스템 만드는 나인와트=“수위 아저씨가 교실마다 돌아다니며 불을 끈다 해도 그 건물 에너지를 얼마나 절약할 수 있겠어요. 전문지식이 없는 이들에게도 최적의 에너지 절약 로드맵을 제공해주자는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졌죠.”
나인와트는 학교·공장 등 건물의 다양한 데이터, AI 분석, 금융서비스 등을 연계해 에너지 저감 시스템을 만드는 스타트업 회사다. 업계 1위 친환경·건물에너지컨설팅 회사에서 잘나가던 이사직을 박차고 나와 창업한 김영록 나인와트 대표는 “작년까지는 시스템 개발에 중점을 뒀다면, 올해는 비즈니스 모델을 얹혀 수익화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나인와트 탄생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국토교통부가 지원하는 성균관대학교 U-CITY 공학과를 전공한 네 명의 동기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에너지 절감 분야에서 시너지를 내며 예비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수행해 나갔다. 이를 통해 탄생한 회사에서 김 대표가 수장을 맡게 됐다.
김 대표는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낭비되는 에너지를 절감하는 것”이라며 “미국에는 대형 에너지 설비들을 잘 이용해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중소기업 중심의 ‘에너지 저감 시장’이 구축돼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에너지 시장이) 대기업 위주”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토부의 토지이용정보시스템, 건물정보, 기상청의 외기정보, 에너지 요금제 변동정보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 대안을 도출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에너지 절약 시장을 키우는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굉장히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S나 G는 잘해도 E를 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의 부족한 친환경 경영을 개선시켜주는 컨설팅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며 “친환경 기업경영은 곧 해당 기업가치를 올려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경을 지키는 스타트업, 더욱 늘어난다=환경을 지키는 스타트업들은 앞으로 더욱 많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소기업벤처부가 지난헤 12월 발표한 ‘2020년 소셜벤처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소셜 벤처 기업들 가운데 50.3%가 환경과 관련된 문제를 주로 해결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태조사에 응답한 1147개 기업 중 20.7%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 보장, 6.4%가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증진, 6.4%가 에너지의 친환경적 생산과 소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밖에 환경문제 해결과 관련한 응답은 회복력 있는 도시 조성(3.5%), 지속가능한 농업 강화(3.0%), 기후변화 대응(2.9%) 순이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최근 기후위기와 더불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젊은층 사이에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졌다”면서 “이들은 단순히 캠페인이나 구호에서 끝나지 않고 사업화를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앞으로 환경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이담·홍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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