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범위한 벌목, 습지가 불쏘시개로
이탄지, 탄소 저장효과 일반산림의 10배
2015년·2019년 산불로 ‘서울 70개’ 소실
천연림 추가개발 불가 ‘모라토리엄’ 시행
기존 허가지역 이용 가능해 벌채권 거래
원주민·시민단체간 법적 공방 벌이기도
탄소배출권 연계한 경제적 이익 취하려
물밑에선 산림자원 가치 재조명 움직임
“인도네시아의 산림 파괴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인도네시아 나무라고 해서 인도네시아만 기후변화를 겪는 건 아닐 테니까요.”(울리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WALHI 소속 활동가)
인도네시아 국토의 60% 이상은 산림이다. 한국과 비중은 비슷하나 면적으로 보면 차원이 다르다. 인도네시아 산림 면적은 총 1억2050만ha(헥타르). 한국의 19배에 이른다. 서울 만한 도시 2000개를 품을 수 있는 규모다. 브라질, 콩고에 이은 세계 3대 열대림 보유국이다. 인도네시아 열대림은 전 세계가 지켜야 할 지구의 허파다. 하지만 팜유를 비롯한 개간 사업에, 대형 산불에 허파가 병들고 있다. 산림 자원의 생산·소비가 전 지구적으로 얽혀 있는 현실에서 전 세계, 그리고 한국 역시 인도네시아 산림 파괴에 응당한 책임이 있다. 그뿐 아니다. 지구의 허파가 병들면 그 폐해는 인도네시아에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인도네시아 산림 파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탄지의 검은 눈물, 국경을 넘다 = 인도네시아 열대림이 특히 가치가 큰 건 바로 이탄지(泥炭地)에 있다. 전 세계에서 이탄지를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지역이다. 이탄지는 나뭇가지, 잎 등 동식물의 잔해가 완전히 분해되지 못하고 퇴적돼 형성된 늪지대로, 탄소 저장 효과가 일반 산림의 10배에 달한다. 인도네시아를 세계 최고 탄소흡수원로 꼽는 이유다. 인도네시아 내 이탄지 규모는 1500만ha에 이른다. 남한 면적의 1.5배다.
이탄지 파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바로 산불이다. 일단 이탄지의 산불은 규모부터 상상을 초월한다. 2015년 인도네시아에선 산불로 약 260만ha 산림을 잃었고 그 중 33%가 이탄지였다. 2019년에도 약 160만ha에 이르는 대형산불이 났다. 두 번의 산불로 서울(약 6만ha) 70개 규모가 불에 탄 셈이다.
피해 규모가 거대한 건 바로 이탄지 특성 때문이다. 조준규 한·인니 산림협력센터장은 “탄소저장량이 많은 이탄지에서 불이 나면 마치 지하 10~20미터 내 저장된 석탄에 불이 붙은 형국이 된다”며 “지상 작업으론 진화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전했다.
탄소배출량도 심각하다. 2015년 산불 당시 인도네시아의 일평균 탄소배출량은 미국과 중국을 넘어설 정도였다. 1997년에도 1170만ha에 달하는 산불이 발생했는데, 당시 배출된 탄소가 전 세계 화석연료 배출 탄소의 최대 40%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있다.
이준산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 임무관은 “이탄지가 본래 습지이기에 산불이 나기 힘든 땅이지만 농민들이 수로를 내고 물을 빼내 이탄지를 건조한 땅으로 바꾸고 농사를 짓다보니 산불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린피스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 ‘연기 속에서의 복원’은 인도네시아 산불 원인과 관련, 세계자원연구소(WRI)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가뭄 자체보다는 광범위한 벌목활동으로 숲의 상태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산림 모라토리엄 그 이후 = 인도네시아 정부는 천연림 벌채허가권을 새로 내주지 않겠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산림 모라토리엄
(Moratorium)’을 2011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이를 3년마다 갱신하도록 했는데, 2019년엔 아예 갱신이 필요 없도록 영구적인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또, 이탄지 복원에 집중하는 별도 행정기관(이탄지복원청)도 6년 전부터 운영 중이다.
인도네시아 산림은 기능에 따라 ▷보전림 ▷보호림 ▷생산림(한정·상설·전환가능)으로 나뉜다. 생산림 중 일부는 여전히 정부 허가를 통해 개간이나 벌채 등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모라토리엄은 천연림이나 이탄지 등 생태적으로 중요한 산림엔 더는 추가 개발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추가 개발은 불가하지만, 기존 이미 허가가 나온 지역의 개발은 가능하다.
다만 이 같은 정부의 의지나 정책이 제대로 반영되기까진 아직 개선 과제도 많다. 우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괴리다. 세계 4위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는 1만개 이상의 섬으로 구성돼 있으며, 300민족 이상의 다민족 국가다. 역사적으로도 지방정부의 자치가 강하다. 중앙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추진해도 일선 현장까지 온전히 적용되기까지 난항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현지 환경단체들은 산림 모라토리엄 이후에도 일선 현장에선 지속적으로 불법적인 벌채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린피스 인도네시아는 최근 인공위성 기초 열대우림 모니터링업체 ‘더 트리맵(TheTreeMap)’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산림 모라토리엄 이후에도 보전림 9만200ha, 보호림 14만6871ha에 추가로 플랜테이션이 조성됐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모라토리엄 시행 이전에 이미 발급된 천연림 벌채권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기존 보유한 벌채권을 활용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신규 발급이 차단되면서 기존 발급된 벌채권을 두고 기업 간 거래가 이뤄지고 있고, 가격도 점차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팜유 개간 등 산림 개발 과정에서 기업과 원주민·시민단체 간의 법적 공방도 불거지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마이티(Mighty)’ 등은 코린도가 개발 과정에서 선주민 합의 이행 등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며 지속가능산림경영 인증기관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에 이의를 제기, 코린도는 결국 2021년 FSC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현지 시민단체의 진정서 제출 등에 따라 올해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연락사무소로부터 “책임경영을 이행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이와 관련,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은 “지금까지 경주해온 노력을 향후에도 지속하라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의 인도네시아산 팜유 수입량은 2012년 3만7370t에서 2021년 34만1802t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현재 한국에 들어오는 팜유의 절반 이상이 인도네시아산이다. 팜유 개간이 산림벌채로 이어지는지 한국이 책임감을 갖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최근엔 물밑에서도 산림 자원 가치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벌채권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산림 벌채로 활용하기보단 탄소배출권 연계 등으로 오히려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움직임들이다. 탄소중립 달성과 탄소배출권 확보에 따른 비용부담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임무관은 “인도외국정부나 기업들도 예전과 달리 단순한 산림개발보다는 기후변화와 연계한 산림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관리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상수·최준선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human@heraldcorp.com
dlc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