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국내에서 우유팩을 사용한 지 50년째 되는 해다. 학생 건강을 책임지는 우유급식은 전 연령대가 공감할 법한 추억이며 긴 역사를 관통한다. 긴 역사에도 불구, 재활용률이 14%에 그친다는 건 그만큼 우유팩 쓰레기에 무관심했다는 방증이다.
종이팩은 크게 우유를 담는 살균팩(우유팩, Gable Top Carton)과 두유나 주스 등에 주로 쓰이는 멸균팩(Aseptic Carton)으로 나뉜다. 멸균팩은 안쪽 면에 은박지 등이 들어가 있다.
종이팩 재활용이 왜 중요할까? 종이팩은 최고급 펄프 소재를 쓰는 고급 재활용품이다. LPB(Liquid Packing Board)를 활용하는데, 세계적으로도 미국이나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서만 생산된다. 한국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재활용하면 고급 티슈나 페이퍼타올로 만들 수 있다.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이고 고급 소재로 재활용되니, 환경적 가치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로도 재활용이 필수다.
종이팩은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대상 재활용품이다. 이들 품목의 재활용률은 한 해 추가 생산된 물량에 비해 재활용된 물량의 비중으로 계산한다. 생산량이 늘면 당연히 재활용량도 늘어야 한다.
종이팩은 반대다. 2011년 6만5059t이던 한 해 생산량은 2021년 7만2968t으로 늘었다. 10년 전보다 한 해 생산되는 종이팩은 8000t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재활용된 물량은 2만828t에서 10만197t으로 줄었다. 반토막이다. 생산은 꾸준히 늘었는데, 재활용량은 오히려 급감한 셈이다. 늘어난 만큼이라도 재활용이 되면 재활용률은 유지라도 된다. 오히려 재활용량이 주니 재활용률도 같은 기간 32%에서 14%로 급감했다. 10년 전엔 그나마 10개 중 3개는 재활용됐다면, 이젠 10개 중 1개만 재활용되는 셈이다. 나머지는? 쓰레기로 묻히거나 소각된다. 환경단체가 지속적으로 종이팩 재활용 대책을 촉구하는 이유다.
각종 수치가 심각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에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건 단계별 난제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재활용품과 달리 일단 소비자에게 많은 품을 요구한다. 환경부의 종이팩 재활용 수칙은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구고 ▷찢어 펼쳐서 ▷별도 수거함에 분리 배출한다. 씻고 찢고 말려야 하니 다른 재활용품에 비해 너무나 번거롭다. 50년 동안 정부도 기업도 재활용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놓지 않았으니 결국 소비자 몫이다.
이런 과정을 감내하면 이젠 배출 단계가 걸린다. 종이팩은 현재 일반 재활용품과 달리 별도 거점인 주민센터 등으로 들고가야 한다. 그마저도 찾기가 쉽지 않다. 한 두 번 의지를 보여도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수거된 이후도 문제다. 여기엔 멸균팩 문제가 있다. 멸균팩은 상온 유통이 가능한 포장재로, 코로나 사태 이후 멸균팩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다. 멸균팩은 알루미늄박과 황색 펄프 등이 사용되기 때문에 일반 우유팩과 섞이면 재활용이 힘들다. 종이팩과 다른 추가 설비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
종이팩 재활용과 관련, 시민단체 등에서 정부에 요구하는 건 ▷종이팩 전용 수거함 설치 의무화 ▷우유팩·살균팩 별도 배출 환경 조성 ▷재활용업체 지원 확대 ▷종이팩 재활용 의무율 상향 조정 등이다.
14%는 심해도 너무 심했다
환경부는 지난 9월 20일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표시 기준’ 일부개정고시안을 행정예고했다. 포장재와 관련, 생산자(기업)는 ‘재활용 최우수’, ‘재활용 우수’, ‘재활용 보통’, ‘재활용 어려움’ 등의 평가 결과를 표기해야 하는데, 제5조는 이 평가결과 표기 적용에서 제외되는 항목들을 명시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종이팩 중 알루미늄박이 부착된 종이팩’, 멸균팩이었다.
환경부는 최근 행정예고를 해당 내용을 삭제, 멸균팩도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 결과를 표시하도록 변경했다. 즉, 향후엔 멸균팩에도 ‘재활용 어려움’ 등의 평가 결과를 표기해야 하는 것이다. 환경부 홈페이지엔 해당 행정예고와 관련, 400개 넘는 의견이 제기되는 등 관심도 뜨거웠다.
환경부 관계자는 “멸균팩 생산·소비량이 계속 늘고 있는 현실에서 소비자 알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도 멸균팩의 재활용 평가 결과를 표기하는 게 필요하다는 취지의 행정예고”라며 “기업에도 ‘재활용 어려움’ 등이 표기되는 게 재활용 관련 투자와 관심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차경 (사)소비자기후행동 공동대표는 “열심히 멸균팩을 분리배출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재활용 어려움’이라는 표기를 보게 될 경우 재활용 자체를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활용률 14%의 오명은 이젠 벗어날 때가 됐다. 종이팩 재활용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대부분 환경 문제가 그렇듯, 난항을 겪는 건 결국 의지와 우선순위 때문이다. 아예 못 쓰게 할 것이 아니라면, 아예 재활용이 안되는 게 아니라면, 14%를 계속 방치하는 건 국격 차원에서도 민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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