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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플라스틱 대신 스테인리스 배달…얼마 내고 쓰실래요? [지구, 뭐래?]
20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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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저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실천가가 아녜요. 오히려 ‘프로(pro) 웨이스터’입니다.”

 

여러 번 재사용 가능한 스테인리스 배달용기를 서비스하는 스타트업 ‘잇그린’의 이준형 대표는 평소 쓰레기를 엄청나게 배출하며 산다. 넘치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스타트업의 대표로서, 다소 부적절한 행보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작정 손가락질하기 힘든 이유가 있다.

 

“환경 보호에 관심 있는 소비자들은 누가 지적하거나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요. 정말 중요한 건, 환경 보호에 관심 없는 이들도 자연스럽게, 혹은 자기도 모르게 환경 보호에 동참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저같은 프로 웨이스터들도 불편함 없이 쓸 수 있는 친환경 서비스가 필요해요. 그런 서비스를 만들려면, 제로 웨이스터보다는 프로 웨이스터가 유리하지 않을까요?”

 

친환경 활동가들은 이런 그의 철학을 마냥 반기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 활동가들이 꿈꿔왔던 변화들을 이 대표와 잇그린이 조금씩 이뤄내고 있다. 공익적이기만 하지는 않은, 하지만 그럼에도 지속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이 대표를 만나 그의 꿈을 물었다.

 

-다회용기 배달은 주문 접수와 요리, 배달까지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옛 중국집에서나 가능한 줄 알았어요. 근데 잇그린을 그걸 요즘의 배달 시장에서 부활시켰습니다.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됐나요?

 

“지난 십수 년 간 주로 국내외에서 친환경 발전소를 짓고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해왔습니다. 그 중엔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 발전소 사업도 있었는데, 쓰레기가 정말 끝도 없이 들어오더라고요. 양도 양이지만, 재활용돼야 할 쓰레기들이 그냥 태워지고 있었고요.

애초에 쓰레기를 덜 버리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고민하던 동료들과 의견이 모인 것은 바로 다회용기 순환 사업이었어요. 그렇게 지난 2020년 말 잇그린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기존에 다회용기 순환 서비스가 없던 게 아닐 텐데요.

 

“기존 서비스는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다회용기 순환 사업이라는 게, 궁극적으로 일회용품 소비를 줄여내는 데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한테까지 ‘일회용품을 줄여야 해, 환경을 위한다면 다회용기 써야 해’ 하며 공익적인 메시지를 줄 필요는 없다고 봐요. 잘 설득되지도 않고요.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그린슈머’들이 많아지고 있다곤 하지만, 실제 저희 조사에 따르면 그린슈머들은 지갑을 잘 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소비자들을 다회용기 순환 시장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 저희는 소비자들에게 굳이 ‘우리 서비스는 친환경적이야’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환경과 무관하게 편리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친환경 실천가들만 타겟으로 하는 게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저희 고객 중에는, 환경을 걱정하시는 분들 외에도 두 가지 유형이 더 있어요. 첫 번째는 귀찮은 걸 너무 싫어하는 분들입니다.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배달을 받았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편하기만 할 것 같지만, 치우는 과정 생각하면 번거롭지 않나요? 특히 사무실에선 국물 묻고 냄새 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가 참 곤란하죠. 옛날에 다회용기에 짜장면 배달받을 때 생각하면, 먹고 난 뒤 그대로 내놓기만 하면 됐잖아요. 그런 편리함을 기대하는 분들이 저희 고객입니다.

 

또 다른 유형은, 플라스틱 용기에 뜨거운 음식을 배달 받으면서 뭔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는 분들입니다. 비닐이나 얇은 플라스틱이 흐물흐물해져 있으면, 혹시나 환경호르몬이 나온 건 아닐까 걱정하시잖아요. 어린 자녀가 있는 가구라면 더 그렇고요. 사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플라스틱 용기에서 환경 호르몬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테인리스 용기를 더 안전하다고 느끼시는 고객들이 적지 않아요.

 

-그냥 내놓기만 하면 된다는 것 외에, 또 어떤 편리함이 있나요?

 

“다회용기를 이용하는 식당에서 배달을 주문하면, 소비자들은 저희가 개발한 별도의 가방에 배달을 받게 됩니다. 음식을 다 드시면 세척하거나 분리수거할 필요 없이, 그냥 뚜껑만 닫아 다시 가방에 넣어 내놓으시면 돼요. 옛날 짜장면 그릇은, 내놓으면 다른 주민들에게 냄새를 풍기거나 고양이가 파헤쳐 지저분해질 걱정이 있었지만, 저희 용기는 가방 안에 있으니 그럴 걱정도 없죠. 특히 저희 가방은 잠수복 소재로 만들어서 국물이 새지도 않아요.

 

가방을 내놓은 뒤에는 QR 코드를 찍으시면 됩니다. ‘다 먹었으니 그릇 가져가라’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굳이 번거롭게 사진을 찍어야 하느냐고 지적하시는 분들도 계시긴 해요. 하지만 30분 만에 다 드시고 내놓으시는 분들은 그릇이 금방 정리돼서 편할 거고, 음식을 2~3일에 나눠 드실 분들은 배달된 그릇 그대로 냉장고에 두고 드시다 나중에 내놓으실 수도 있어요. 원할 때에 수거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는 거죠.”

 

수거가 IT 인프라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은 잇그린의 서비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일회용 쓰레기와 탄소 배출량을 줄여냈는지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토대로 잇그린은 내년 중 배출권 거래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기를 이용하면 추가 비용이 청구되는 것으로 압니다.

 

“기본적으로 1000원이 청구됩니다. 지금은 서울시가 다회용기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그 비용을 전부 지원해주고 있어서 소비자들은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요. 물론 나중에는 서울시가 지원을 멈출 거고 결국 고객들도 다시 비용을 내게 될 텐데요. 저희 서비스의 편리함을 생각하면 수요는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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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의 텀블러 판매가 일종의 ‘그린워싱’이라는 지적이 있듯이, 다회용기도 정말 친환경적일까 하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실제 세척하는 과정에서 많은 물과 에너지를 쓸 테고요.

 

“그래서 저희는 물 사용량, 에너지 사용량, 폐기물 감축량, 탄소 배출량을 전부 추적하고 있어요. 이 모든 걸 고려했을 때, 24회 이상 재사용되는 순간부터 스테인리스 용기가 일회용 플라스틱보다 친환경적이라고 계산됩니다. 결과적으로는 다회용기 1개랑 일회용 용기 300개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비슷해요. 사실 텀블러같은 경우 개인들이 주로 사용하다 보니까 24회보다 적게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을 거예요. 근데 저희는 직접 용기를 회수하고 세척하면서 계속 사용횟수를 늘려나가니까 재사용의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죠.”

 

현재 잇그린은 사각 스테인리스 용기, 소형 반찬 용기, 재사용 컵 등 11개 종류로 8만개의 다회용기를 제조해 순환시키고 있다. 다회용기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해 9월인데, 지난 5월까지 잇그린은 약 41만개의 일회용품 사용을 줄였다. 서비스가 지속되고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재사용의 효용은 더 빨리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수만 개의 컵이 순환되고 있는데, 회수는 잘 되나요?

 

“회수는 택배업체 및 배달대행사들과의 파트너십을 토대로 이뤄져요. 기사님들이 일부러 저희 용기만 회수하기 위해 이동하시는 건 아니고요. 예를들어 A동 101호에 배달할 물건이 있는데 202호에 회수할 다회용기가 있으면, 그걸 회수해 줄 수 있겠느냐고 콜을 띄우는 방식이죠. 배달앱 시스템과 연동됐기 때문에 가능한 시스템이에요. 그렇게 회수된 용기는 지역별 거점에 모일 거고, 그걸 저희가 전기 트럭으로 가져와 세척합니다. 택배나 배달기사 분들 입장에서도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윈윈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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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그릇을 반납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 물으시는 분들도 계세요. 근데 분실률을 살펴보면, 저희가 서비스를 시작하고 난 뒤 약 1년 반 동안, 잃어버린 건 제작된 전체 물량의 5%가 채 안 돼요. 중국집 다회용기 분실률이나 홀 식당의 식기 훼손율보다도 낮죠. 우선 QR 코드를 통해 반납 상황을 확인하다 보니, 일부러 훔쳐가는 경우는 드물어요. 또 반납을 까먹을 수도 있으니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납 요청 안내 메시지를 드리는데, 1차 메시지가 나가고 난 다음에는 회수율이 70% 이상으로, 2차 메시지까지 보낸 난 다음에는 거의 다 반납이 이뤄집니다.”

 

-배달 시장에서의 확장 계획은?

 

“현재 잇그린의 다회용기 서비스는 서울 강남과 서초, 경기 화성과 용인에서 이뤄지고 있어요. 올해 중 서울 관악구, 서대문구, 광진구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고요. 내년 초에는 서울 전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후 지역 주요 도시로 확장해보려고 합니다. 플랫폼 측면에서는 현재까진 ‘요기요’에서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올 9월 초부터는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땡겨요’ 앱에서도 동일하게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주문량이 크게 늘 걸로 기대하고 있어요.”

 

-다회용기로 음식을 받는 고객 외에, 다회용기로 배달하는 매장 입장에서는 어떤 이점이 있나요?

 

“매장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매출일 겁니다. 다회용기 서비스를 도입하고 난 뒤 어떤 매장은 매출이 3배까지 뛰기도 했어요. 일단 앱에서 고객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늘어납니다. 요기요의 경우 다회용기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는 매장을 별도의 탭에서 노출해 주거든요. 또 다회용기를 쓰시는 분들은 계속 다회용기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요. 환경을 생각하는 고객들도 있지만, 서비스의 편리함을 느낀 거겠죠. 그렇게 단골 그룹이 형성되는 상황도 매장 매출 향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불편이 없진 않아요. 일회용기와 다회용기 둘 다 구비하려다 보니 매장 내 공간이 협소하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에서도 저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그 뒤로는 굳이 매장도 일회용 용기를 구비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아무래도 다회용기다 보니 일회용 용기보다 비용이 들 것 같은데요.

 

“일회용기를 쓸 때에 비해 다회용기를 이용할 때 비용이 5~10% 정도 비쌉니다. 생각보다 차이가 작죠. 오히려 다양한 종류의 용기가 필요한 경우는 다회용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저렴하기도 해요. 실제 점주들이 많이 이용하는 ‘배민상회’ 사이트에서 족발 세트 포장을 위한 일회용기 구매 비용을 계산해 보니 2074원이었어요. 하지만 저희 다회용기를 쓰면 2074원이면 돼요. 다회용기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매출이 10% 이상 뛰면 결국 이윤이 남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배달 외 시장도 공략하고 계시다고요.

 

“기업들도 저희 고객입니다. 요즘 IT 스타트업은 회사에 구내식당을 두기보다는, 여러 종류의 메뉴를 도시락처럼 배달시켜 직원들이 직접 가져다 먹도록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점심 정기 배송 서비스라고도 하는데요. 그때 저희 다회용기가 사용됩니다. 현재 당근마켓, 야놀자, 넷플릭스 등이 저희 서비스의 고객이에요.

 

스포츠 이벤트도 저희가 주목하는 시장입니다. 축구나 야구 등 경기가 열리면 푸드트럭 등에서 일회용기가 엄청 사용되거든요. 큰 행사에는 하루에 6~8만개씩 쓰여요. 저희 다회용기로 이걸 대체할 수 있죠. 최근 열렸던 브라질-한국 축구 평가전에서도 저희 다회용기가 사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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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그린의 매출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해 연간 4억원 수준의 매출을 올렸는데, 올해는 1~5월 기간에만 2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업계 1위 배달 플랫폼인 배달의민족과 수도권 내 점유율이 높은 쿠팡이츠에서도 서비스가 시작되면, 내년의 매출 성장률은 올해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잇그린은 이르면 상반기 중 시리즈A 라운드 투자 유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많은 투자사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롯데벤처스와 CJ제일제당 등 대기업의 투자가 눈에 띄는데요. 어떤 시너지를 원하던가요?

 

“프리-A 라운드까지 총 10억원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임팩트 엑셀러레이터인 임팩트스퀘어와 스파크랩스, CJ제일제당, 롯데벤처스 등이 투자해주셨어요. 투자사들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주목했는데, 롯데벤처스와 CJ제일제당과 같은 대기업 계열 투자사들은 협업을 위해 투자한 것 같아요. 두 그룹 모두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고, F&B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으며, 오프라인 점포를 갖고 있죠. 모두 일회용품이 많이 사용되는 분야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곳 모두 물류·택배를 갖고 있어서 저희와 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고요.

 

이 대표는 우리 사회가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을 근절해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 문제에 관심 없는 소비자들도 편리하게 이용할 만한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그를 통해 환경에 조금이나마 기여해보자는 게 그의 사업 철학이다.

 

“환경을 지켜내겠다는 투사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건 아녜요. 그래도, 기존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친환경적 서비스를 IT 기술을 통해 편리하게 선보임으로써 게임 체인저가 되어보고픈 포부는 있습니다. 일회용품보다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친환경 용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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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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