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고헤이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읽기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반대급부로 ‘그린워싱(green washing)’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린워싱이란 실제로는 환경에 유해하면서도 환경을 위하는 척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을 말하죠.
그런데 최근 유엔(UN)과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SDGs)’를 두고 그린워싱이라고 지적하는 대담한 학자가 등장했습니다. 앞서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고달픈 현실이 불러일으키는 고뇌를 완화해주는 ‘종교’를 가리켜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판한 바 있는데요, 저자는 이를 빌어 “지속가능한발전목표는 그야말로 현대판 대중의 아편”이라고 지적하죠.
이 대담한 사상가는 최근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일본의 경제학자 사이토 고헤이입니다. 오사카시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연구과의 부교수인 그는 1987년생의 젊은 나이임에도 깊은 통찰을 쏟아냅니다.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진보적 저술에 주어지는 ‘도이처 기념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한 인물이라고도 하네요.
오늘 〈지구, 뭐래?〉는 사이토 고헤이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 담긴 인사이트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선뜻 수긍하기 힘든 주장이 잔뜩 등장하기도 합니다만, 천천히 따라오시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정말 그 값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1. 자본주의는 환경 위기의 주적
가장 먼저, 저자는 “자본주의가 인간뿐 아니라 자연환경도 약탈해 왔다”-31쪽고 지적합니다. 자본주의는 사회를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는데요, 주변부에서 저렴한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 생산물을 마구 사들임으로써 중심부는 더 큰 이윤을 남겨 왔습니다. 그런데 착취 대상에는 인간 노동력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도 포함됩니다. 선진국이 주변부로부터 자원, 에너지, 식량 모두 착취하고 있다는 거죠.
팜유를 예로 들어볼까요(31쪽). 팜유는 가격이 저렴하고 쉽게 산화되지 않아서 가공식품, 과자, 패스트푸드 등에 널리 쓰입니다. 이런 팜유의 주생산지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입니다. 팜유의 원료인 기름야자의 재배 면적은 21세기 들어 배 이상 넓어졌고, 열대우림 난개발로 밀림이 급속하게 파괴됐습니다.
이뿐인가요. 개간의 결과로 토양 침식이 일어났고, 비료와 농약이 하천으로 흘러간 탓에 물고기가 줄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물고기로 단백질을 섭취해왔기 때문에 전보다 더 돈이 필요해졌습니다. 오랑우탄, 호랑이 등 멸종위기종 불법 거래에 발을 들이는 이유 중 하나죠.
또 다른 예로는 전기차가 있습니다(96쪽). 내연기관 자동차가 배출하는 막대한 탄소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기차 등 저탄소 차량은 필요하고,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전기차 생산에는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이 필수예요. 리튬은 건조한 지역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지하수에 농축되는데, 그래서 리튬을 함유한 물을 퍼 올린 다음 수분을 증발시키면 리튬을 얻을 수 있다고 해요. 문제는 물을 어마어마하게 퍼 올린다는 점입니다. 한 회사가 초당 1700ℓ나 되는 지하수를 끌어올린다고 하니 말 다했죠. 건조한 지역에서 그렇게 많은 지하수를 퍼 올리면 일대의 생태계가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용할 담수의 양도 줄어들고요.
코발트도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원료입니다. 전 세계 코발트의 약 60%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제공된다고 합니다. 콩고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며 정치·사회적으로도 불안정한 나라죠. 전 세계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대규모 채굴과 채굴지 확대는 콩고에서 수질 오염, 농작물 오염, 환경 파괴, 경관 파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콩고에선 비공식적인 노예 노동과 아동 노동이 만연합니다. 이 중에는 6~7세에 불과한 어린아이도 있다고 해요.
우리는 이처럼 자연을 약탈하면서도, 그에 따른 비극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미루고 부담을 전가해 왔습니다. 앞서 살펴봤던 팜유와 전기차 사례는 일종의 ‘공간적 전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자본주의는 환경에 대한 부담을 시간적으로 전가하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는 주주와 경영자의 의견은 반영하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 세대의 의견은 무시”-47쪽한다는 거예요. 현재가 번영하기 위해 미래를 희생시킨 겁니다.
프랑스에선 ‘대홍수여, 내가 죽은 뒤에 와라’는 관용어가 있다고 해요. 프랑스에서 무책임한 정치인을 지적할 때 자주 활용되는데요, 프랑스를 잘못 이끌어 대혁명의 계기를 제공했던 루이 15세가 이렇게 얘기했다는 설도 있어요. 근데 이 표현은 자본주의가 환경 위기를 미래로 전가하는 모습을 꼬집을 때에도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2. 녹색 성장이라는 환상
지구는 유한하고, 그래서 지구 환경에 대한 착취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자본이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 필요한 ‘저렴한 노동력’이라는 미개척지가 더이상 없듯이, 채굴과 전가를 위해 필요한 ‘저렴한 자연’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36쪽
이때 자본주의 앞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녹색 성장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경제가 성장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던 자본가들이 ‘환경을 신경 쓰면서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찾아낸 겁니다. “UN, 세계은행, IMF, OECD 등 국제 엘리트들이 모두 지속가능한성장을 강조하며 ‘녹색 성장’을 좇고 있습니다. 녹색이야말로 새로운 경제 성장의 찬스”-62쪽라는 거죠.
녹색 성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디커플링’이라는 개념이 도움을 줍니다. 디커플링은 ‘떼어냄’, ‘분리’ 등을 의미하는데요. 보통 경제가 성장할수록 환경에 주는 부담(환경 부하)은 늘어나는데, 녹색 성장은 이 두 현상을 디커플링시켜 보겠다는 겁니다. 경제 성장률에 비해 탄소 배출의 증가율을 상대적으로 떨어트리는 ‘상대적 디커플링’과, 아예 절대적인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도 목표하는 ‘절대적 디커플링’이 있는데요. 녹색 성장의 목표는 절대적 디커플링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절대적 디커플링은 환상에 가깝다고 맹공합니다. 우선, ‘경제 성장→자원 소비량 증가→탄소 배출량 증가’라는 고리를 끊어내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에요. 지난 수십 년간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의 에너지 효율은 크게 개선됐습니다. 상대적 디커플링에는 성공한 것 같네요. 하지만 경제 성장의 중심이 중국과 브라질로 옮겨왔고, 그 과정은 디커플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2004년부터 2015년 사이, 전 세계 실질GDP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비율은 매년 0.2% 낮아지는 데 그쳤습니다. 절대적 디커플링은 꿈꾸기 어려운”-72쪽 실적이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결국 문제는 신흥국인데, 걔네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앞서 살펴봤던 자본주의의 ‘공간적 전가’를 떠올리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중국, 브라질, 인도 등에서 채집된 자원과 생산된 상품 중 적지 않은 것들이 선진국으로 수출돼 소비됩니다. 부담을 떠넘긴 셈인데,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일어난 디커플링은 눈속임에 가깝습니다.
실제 환경학자 토마스 비트만은 국제 무역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해 ‘재료 발자국(소비된 천연자원)’을 계산했는데요. 분명 선진국의 국내 물질 소비량은 감소하고 있지만, 수입하는 자원의 재료 발자국을 더해보니 각국의 재료 발자국은 실질GDP와 비슷한 정도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87쪽)
더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에너지 효율화는 디커플링의 필수 요소인데, 역설적으로 효율화 때문에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더 어려워진다”-76쪽는 거예요. 신기술이 개발돼 효율성이 높아져도, 상품이 그만큼 저렴해지는 바람에 결국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거죠. TV의 전력 효율은 갈수록 떨어지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TV를 삽니다. 자동차 연비가 향상됐지만, SUV 같은 대형차 판매가 늘어나면서 효율 향상이 무의미해졌고요.
기술이 아직 덜 발달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요? 슬프게도, 기술이 보여주는 미래 역시 어둡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200만대인 전기자동차가 2040년에는 2억8000만대까지 늘어날 예정인데요. 그로 인해 줄어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불과 1%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배터리 원료 채굴 과정, 전기 자동차 생산 과정에도 화석 연료가 쓰이고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죠.
대기 중 탄소를 제거하는 기술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탄소 포집 및 저장이 가능한 발전 설비에는 물이 대량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발전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처리하는 것에만, 물이 연간 1300억t이 필요하다고 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자국 내에서는 녹색을 칭송하는 경제 정책이 실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주변부에서는 갈수록 약탈이 심해지고 있다. 주변주의 약탈이 중심부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중략) 멸종에 이르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96쪽
3.성장이 번영을 가져온다는 잘못된 신화
녹색 성장이 정말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애초에 성장을 포기해야 할까요? 저자는 “그렇다”고 얘기합니다. “경제 성장을 포기하고, 기후 변화 대책의 방안으로 탈성장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103쪽는 거죠.
사실 탈성장을 주장하면 당장 무수한 비난들이 쏟아집니다. “여전히 물, 소득, 교육 등 기본적인 사회적 기초가 불충분한 국가가 많은데, 성장을 포기하자고? 선진국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PC(정치적 올바름) 아니야?” “결국 청빈하게 살자는 건데, 진짜 노동자들의 고통을 모르는군!” 하고 말이죠. ‘경제 성장만이 사회에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명제가 참이라면, 이 같은 비난은 타당할 겁니다.
하지만 저자는 반문합니다. “자본주의가 이만큼이나 발전했는데, 아직도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가난한 것은 좀 이상”하지 않나요?-120쪽
미국과 유럽 각국을 비교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데요. 독일, 프랑스, 북유럽 등 국가 중에는 1인당 GDP가 미국보다 낮은 나라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복지 수준은 미국보다 훨씬 높아서 의료와 고등교육이 무상으로 이뤄지기도 하죠. 반면 미국에선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도 수없이 많습니다.
저자는 성장을 고집하는 대신, 분배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예를 드는데요, “전 세계 식량 공급의 1%만 있어도 8억5000만명을 기아 상태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전력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약 13억명이라고 하는데, 그들 모두에게 전력을 공급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단 1%가 증가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1.25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14억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에는 세계 전체 소득 중 겨우 0.2%만 재분배해도 충분”-108쪽합니다.
다시 말해 경제 성장에 연연하며 환경을 파괴하지 않아도, 자본이 갈라놓았던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극심한 격차와 불공정은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거죠. “선진국이 쓰려 하는 자원과 에너지를 ‘주변부’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행복도는 크게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109쪽
4.탈성장은 자본주의와 타협할 수 없다
탈성장, 평등, 분배… 사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당장 ‘정체’나 ‘쇠퇴’와 같은 부정적인 인상을 주잖아요. 특히 저자가 속한 일본 사회의 경우, ‘잃어버린 30년’ 때문에 취업 빙하기에 처한 젊은 세대들이 탈성장을 외치는 기존 세대와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사실 탈성장 개념은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이 붕괴했을 당시, 리버럴 좌파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 탈성장을 외쳤다고 해요. 하지만 이미 마르크스주의에 “과거로의 불가능한 회귀를 꿈꾸는 공상주의”라는 낙인이 찍혀있는 만큼 그들은 사회주의(공산주의)와는 선을 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과거 탈성장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유지하되, 사회민주주의식 복지국가 정책으로 시장을 다스리자는 선에서 타협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 안에서의 탈성장’은 불가능하다며, 기존 탈성장론자들과는 선을 긋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성장이 멈추면, 기업은 더욱 필사적으로 이익을 올리려 들 텐데, 이는 제로섬 게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자 임금 삭감,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대 등.. 오히려 격차를 벌리고 약탈을 심화”-134쪽할 수 있죠.
그래서 저자는 탈성장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GDP에 꼭 반영되지 않는, 사람들의 번영과 생활의 질에 중점을 두자는 거죠. 즉 저자가 주창하는 탈성장이란, “지구의 한계를 주의하면서 경제적 격차 해소, 사회 보장 확충, 여가 증대 등을 중시하는 경제 모델로 전환하는 일대 계획”-135쪽입니다.
5.‘공유지’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아직 저자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평등한 대신 국가가 처벌과 감시를 남용하는 ‘마오쩌둥주의’, 불평등하고 국가 권력도 강한 ‘파시즘’ 등, 사회주의를 생각하면 이런 실패 사례들이 떠오르는데요. 탈성장 사회주의는 이와는 다릅니다. 저자는 평등하면서도 국가 권력은 약한, 아직 인류가 가본 적 없는 ‘제3의 길’이 있다고 해요.
제3의길은 또 뭘까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최근 이뤄지는 마르크스 재해석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커먼(common)’ 혹은 ‘공(共)’이라는 개념을 소환합니다(144쪽). 커먼이란,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부(富)를 가리키는데요, 편의상 여기선 공유지라고 부를게요. ①물과 토양 같은 자연 환경, 전력과 교통 같은 사회적 인프라, 교육과 의료 같은 사회제도를 사회 전체의 공동 재산으로 삼아 ②국가의 규칙이나 시장의 기준에 맡기지 말고 사회적으로 관리·운영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저자의 아이디어입니다.
사실 자본주의는 공유지를 해체하면서 성장했습니다. 토지를 예로 들까요(239쪽). 토지를 사회 전체가 관리하는 시스템에서는, 누구도 굳이 상품을 구입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자본가는 토지에서 사람들을 내쫓고 상품의 희소성을 높여 부를 축적했습니다. 하천도 마찬가지입니다(240쪽). 마실 물과 물고기, 그리고 에너지(수력)까지 제공하던 우리 모두의 자원 하천을 대신해, 특정한 곳에만 존재하고 누군가 독점할 수 있는 화석연료가 자본주의를 부흥(산업혁명)시켰죠.
공유지가 사유지가 되면, “그 소유자인 자본가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맘대로 써먹을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땅을 갖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이 떨어져도, 토지가 점점 메말라도, 수질이 오염되어도, 누구도 소유자의 횡포를 막지 못합니다”.-244쪽 자본가의 재산이 늘어나면서 화폐로 계측되는 ‘국가의 부’는 늘어나지겠지만 ‘공공의 부’는 감소하게 되는 비극이죠.
전 세계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우리가 살아갈 지구 환경(공공의 부)이 황폐화된 것을 떠올리면 쉽겠네요. “자본주의는 파괴와 낭비같은 행위조차도 희소성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절호의 기회로 삼습니다. 파괴와 낭비가 풍요로운 것을 점점 희소하게 만들면, 그와 동시에 자본이 가치를 증식할 기회가 생겨나는 것이죠. 기후 변화가 비즈니스 찬스인 것도 그 때문”-252쪽입니다.
결국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한 방법은 공유지를 재건하고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이전의 ‘공공의 풍요’를 되찾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전력은 공유되어야 합니다. 전력의 관리 권한이 시민에게 돌아가는 것이죠. 국영화라는 표현 대신 ‘시민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이미 덴마크와 독일,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었던 일본 등에서 시민영화 모델이 등장했다고 해요. 시민이 시의회를 통해 사모채권이나 녹색채권으로 돈을 모으고, 방치된 경작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방식의 자급자족 모델이죠.
에너지를 지역 안에서 소비한다면, 그간 전기요금으로 나가던 돈이 그 지역 내로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애초에 영리를 목적으로 축적된 돈이 아니니, 그 돈은 지역사회 활성화를 위해 쓰일 것이고요. 이렇게 되면 “시민들은 공유지가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있음을 느끼고, 공유지 관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260쪽
6.노동시간을 줄이자
본격적으로 탈성장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팁’들을 살펴볼까요. 우선 성장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속은 ‘노동과 생산의 혁신’을 중심으로 하는 다섯 가지 주춧돌 위해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주춧돌은 기후 위기 해결에 기여합니다.
① ‘상품가치’ 대신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경제로 전환해 대량 생산, 대량 소비에서 벗어나자: 상품의 가치가 중요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사용가치(유용성)이나 상품의 질, 환경 파괴 등은 어찌 돼도 상관없이 잘 팔리기만 하면 됩니다. 일단 팔고나면 그걸 곧장 버려도 상관없고요. -298쪽
② 노동시간을 줄이고 생활의 질은 높이자: 불필요한 것을 만들지 않으면 사회 전체의 노동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무의미한 일을 줄인 것이라 실질적인 사회의 번영은 유지될 겁니다. 실은 유지 정도가 아니죠. 노동 시간 단축은 사람들의 생활에도, 자연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겁니다.-300쪽
③ 노동을 획일화하는 분업을 폐지해 노동의 창조성을 회복시키자: 노동시간이 단축돼도 노동 자체가 지루하고 힘들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소비주의적 활동에 몰두할 겁니다. 그래서 노동이라는 활동의 핵심을 바꿔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인간다운 생활을 되찾기 위해 필요합니다.-304쪽
④ 생산 과정에서 민주화를 진행해 경제를 감속시키자: 일하는 방식을 개혁하려면 노동자들이 생산 과정에서 의사결정권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생산과정에서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어떻게 사용할지 열린 형식으로, 민주적인 토의를 거쳐 결정하는 거죠. 이 같은 ‘사회적 소유’의 핵심은 의사결정 과정의 속도를 떨어트린다는 것입니다. -307쪽
⑤ 사용가치 경제로 전환해 노동집약적인 필수 노동을 중시하자: 탈성장 사회주의는 기계화가 어려워서 인간이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집약적산업’을 중시하는 쪽으로 사회의 방향을 전환합니다. 그 전환은 경제 활동의 속도를 떨어트릴 것입니다. 노동의 양상이 이렇게 변하는 건,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져 에너지 효율이 떨어질 미래 사회와도 어울리고요. -309쪽
7.정리
지금까지 사이토 고헤이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핵심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어떠신가요? 그간 자본주의의 경쟁 사회에 물들어 있던 저를 비롯해 대부분은 성장의 속도를 떨어트려야 한다는 저자의 발상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지금의 자본주의로는 미래 세대에게 온전한 지구를 물려주기 힘들다는 것 자체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을 할애해 전 세계 곳곳에서 탈성장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며 사례를 소개합니다. 바르셀로나가 대표적인데요, 전력과 식량의 자급자족, 자동차·비행기·선박 제한 등을 선언한 ‘두려움을 모르는 도시’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선 오래전부터 사회주의적 시도가 산발적으로 이뤄져 왔는데요, 기후 변화 문제가 이 운동을 한데 모아 더욱 커다란 시스템 변혁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밀어줬다고 하네요.
이런 시도들이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은 자명하다. 잘 풀릴지 어떨지도 모르는 계획을 믿고 99%의 사람이 움직이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뒷걸음질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중략) 당장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시스템 변혁이라는 과제의 거대함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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