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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왕뚜껑 컵라면, 아직 ‘스티로폼’인데 문제 없나요? [지구, 뭐래?]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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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당연히 종이 컵라면이 스티로폼 컵라면보다 좋은 것 아니었어?”

 

언제부턴가 스티로폼 컵라면은 우리 사회에서 퇴출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폴리스티렌(PS)으로 만든 용기다. 스테디셀러 컵라면인 ‘육개장’, ‘새우탕’, ‘김치사발면’, ‘우육탕사발면’, ‘튀김우동’ 등 용기가 PS에서 종이 용기로 대체됐다.

 

이유는 환경호르몬 때문이었다. 내열성이 낮은 PS 용기에 끓는 물을 부으면, 내분비 교란 원인 물질로 지목되는 비스페놀A 등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는 우려가 있었다. 육개장 컵라면의 용기가 종이로 바뀐다는 뉴스 기사에, 한 누리꾼은 “어릴적 좋아하던 육개장을 환경호르몬 때문에 수십 년 째 못 먹었는데, 이젠 먹을 수 있게 됐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어제도 스티로폼 육개장 먹었는데?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여전히 마트나 편의점에 가면 PS용기가 당당히 진열돼 있다. 앞서 언급한스테디셀러 컵라면들도 큰컵 용기만 종이로 바뀌었을 뿐, 작은컵은 여전히 PS 용기로 만들어진다. 농심 제품 외에 팔도의 ‘왕뚜껑’, ‘도시락’ 등도 PS용기다.

 

헤럴드경제가 최근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가장 최근 집계인 2020년 기준 컵라면 제조3사(농심, 팔도, 오뚜기)의 폴리스티렌페이퍼(PSP) 사용량은 5745t에 이른다. 농심이 3066t을 사용해 가장 많았고, 이어 팔도 2012t, 오뚜기 668t 순이었다. 농심 컵라면의 대표격인 육개장과 김치사발면 두 제품만 해도 2020년 기준 매출이 1240억원에 달한다.

 

PS 용기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스티로폼 컵라면이 만들어지고 유통될 수 있는 걸까.

 

식약처 “컵라면 용기, 무해하다”


우선 정부가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컵라면 등 일회용 용기로 많이 사용되는 PS 재질을 대상으로 휘발성 물질 등 유해 물질의 안정성을 조사한 결과, 안전한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컵라면 용기, 일회용 컵·뚜껑 등 PS 용기 및 포장재 49건에 대해 일반적 사용 조건보다 가혹한 조건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조사 대상 중 8건에서 발암물질인 ‘스티렌’이 미량 검출됐으나, 인체에 노출돼도 안전하다고 평가하는 수준의 2.2%에 불과했다. 특히 컵라면 용기의 경우는 아예 발암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우려되던 비스페놀A, 프탈레이트류는 PS 재질의 특성상 사용되지 않는 물질이므로 용출될 가능성이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즉 ▷사람들이 걱정하는 환경호르몬은 PS에서 용출될 가능성이 없고 ▷일부 PS 제품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긴 했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며 ▷컵라면 용기의 경우 그마저도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바로 튀긴 뜨거운 튀김류를 담거나 전자레인지 등으로 가열할 때에는 용기에 변형이 생길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롭지 않다는데.. “그래도 종이로 바꾼다”


인체에 해롭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기업들은 컵라면 용기를 종이로 전환해 나갈 계획이다. 농심 육개장이나 팔도 왕뚜껑이 여전히 PS 용기로 제작되고 있던 것은, 단지 브랜드 정체성과 레시피 때문이었다.

 

종이 용기는 평평한 바닥 옆에 벽을 둘러싸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육개장이나 왕뚜껑은 둥근 사발 형태의 일체형 용기다. 당장 종이 용기로 바꾸기 위해 이같은 디자인을 포기하면 수십년 간 쌓아 온 제품의 정체성이 훼손될 수 있다. 사발 형태를 종이로 구현했을 때 국물이 새어 나오지 않게 하는 것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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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관계자는 “용기의 소재를 종이로 바꾸더라도 기존의 브랜드 콘셉트는 지켜야 하는데, 이를 위한 연구 개발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기는 제품의 레시피에도 영향을 미친다. PS 용기에 비해 종이 용기는 보온성이 떨어진다. 업계 전문 용어로 ‘품온(품고 있는 온도)’이라고도 하는데, PS의 품온이 종이보다 4~5도 높다. 종이 용기로 바꿀 경우 면의 굵기나 스프 배합 등도 다시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종이 컵라면, 정말 친환경적이려면


인체에 해롭지도 않은데도 굳이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들이며 종이 용기로 바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환경’ 때문이다. PS 용기를 종이 용기로 전환하면 일단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모든 산업계가 환경 이슈에 민감해진 상황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은 척결 대상 1호다.

 

하지만, 종이 용기가 정말 친환경적인가에 대해선 아직 의문점이 남는다. 100% 종이로만 만들어진 종이 용기는 없기 때문. 대부분의 종이 용기는 국물과 닿아도 젖지 않도록 내부에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플라스틱으로 코팅돼 있다. 일부 제품은 내부와 외부 모두 코팅하기도 한다. 이처럼 코팅된 종이는 재활용하기 어려워, 정부는 일반 쓰레기로 배출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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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결국 스티로폼 컵라면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실제 일각에선, 소비자들이 깨끗이 씻고 햇빛에 말려 배출하기만 한다면 PS가 자원순환 측면에선 친환경적일 것이란 평가도 있다. 하지만 간편하게 먹기 위해 선택한 컵라면을 설거지까지 하고 이틀 이상 말려 배출할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해법은 ‘수거’에 있다. 코팅된 종이라고 무조건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약품을 이용해 해리 과정을 거치면 종이와 플라스틱을 분리할 수 있어 화장지 등 새 제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코팅 종이를 종이로 분리배출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것은, 별도의 처리 과정 없이도 재활용될 수 있는 다른 종이의 재활용 효율을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즉, 컵라면 용기만 따로 모으면 고급 재활용이 가능하다. 현재 우유팩이나 두유팩(멸균팩)을 따로 모으는 것과 같은 원리다. 라면 제조사가 편의점, 아파트 단지 등 지역 거점과 협력해 깨끗한 종이 용기만 따로 수거하고 재활용한다면 환경을 생각한다는 본래 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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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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