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생산설비 회사에서 분진 보고 많은 생각
밤샘연구 끝 산소발생마스크 개발 후 특허 따내
하지만 판매처 못뚫고 상품화 하는데 악전고투
SK이노베이션 투자 받고 본격적인 생산 체제로
덕분에 소셜벤처와 사회적 기업 의미에 눈을 떠
“가치 얹은 행복마스크 싸게 공급하는 게 미션”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하남)]=“그때는 정말 3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를 전쟁터라고 생각했죠. 고생 많았을때죠.”
서준걸(40) 오투엠 대표는 지난 2016년 한해를 이렇게 회고한다.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 그렇게까지 잠을 줄이며 악전고투의 날을 보냈을까.
그 이유는 다시 몇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처음에 아버지 회사의 제조현장에 근무했다. 2007년이었고, 일종의 경영수업이었다. 그 회사는 2차전지 생산 자동화설비를 만드는 곳이었다. 일은 힘들지 않았지만, 분진(공기 속에 부유하는 입자상 물질의 총칭)이 대단했다. 앞이 안보일 정도일때도 있었다. 암모니아 냄새도 심했다. 법적으로 써야 하는 분진마스크가 있었지만, 당시는 마스크를 잘 안쓰는 분위기였다. 그러다보니 자고 일어나면 콧속의 분진들이 뭉쳐 코 밑으로 흘러내릴 정도였다. 아, 뭔가 실용적인 마스크가 필요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디어란 머릿속에 담아두기만 하면 아이디어가 아닌 법. 그때부터 마스크에 대해 고민했다.
“제가 마케팅과를 나와서 사실 공학적인 길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공부했죠. 마스크에 대해서요. 미쳤었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밤낮으로 원료에 대해 공부했고, 각종 원서를 탐독했다. 그러다가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인 비상용 호흡장치 원료로 사용하는 고체산소(Solid Oxyzen)라는 존재를 알게됐다. 거기에 뭔가 해답이 있을 것 같았다. 3시간 이상 자지 않는 시절이 바로 그때였던 것이다. 머릿속에 뭔가 뱅뱅 돌다가 지쳐 겨우 잠들었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새벽녘에도 벌떡 일어나 메모를 했고, 직접 수작업을 하며 마스크를 만들었다. 도전했고 실패했고 또 도전했고 실패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드디어 결과물이 나왔다. 그게 바로 산소발생마스크였고, 핵심기술이 바로 산소공급부(O2S)였다.
“산소공급부는 산소발생마스크의 존재이유이자, 응축된 기술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O2S에 부착된 고체연료가 막이 벗겨지는 순간 공기와 결합해 산소를 발생시키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해주기에 마스크내 청정 공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일반 마스크와는 그래서 다른 것이죠.”
잠이 모자라 매일 토끼눈처럼 충혈된 상태로 보낸 3년간의 모진 고생이 보람으로 다가온 것도 이때였다. 자신감이 찬 서 대표는 2016년 오투엠을 설립했고, 2017년초 이 기술에 관해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획득했다. 모든게 잘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산(山)을 하나 넘으면 또다른 산을 넘어야 하는게 인생의 숙명 아닌가. 기술이 좋다고 곧바로 시장에서 통한다고 여기면 바보 취급 당하기 십상인게 비즈니스 세계다. 기술은 뛰어날지 몰라도 상품화의 길은 멀었다. 2016년에 산소발생마스크 생산 기술을 개발했지만, 그것을 생산할 공간(공장)이 없었다. 이 기술의 ‘비즈니스 가치’를 인정해줄 곳이 필요했다.
“산소발생마스크 샘플을 갖고 마스크회사라는 회사는 다 찾아갔을 겁니다. 구매를 해주든, 공장 투자를 해주든 이 기술을 알아주고 파트너를 맺어줄 곳이 절실했습니다. 그런데 죄다 딱지 맞았어요. ‘기술은 획기적이고 좋은데 상품화하면 팔릴 것 같지 않다’는게 대부분의 반응이었어요. 오늘날 최대위기인 코로나의 ‘코’자도 없던때니까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파인텍이라는 회사에서 뒤늦게 서 대표의 기술력을 알아보곤 샘플을 구매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소량이지만 제품 공급의 길은 열렸다. 한줄기 빛이 보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문자생산방식(OEM)의 소량생산 체제였다. 어디서 큰 투자를 받으면 더 뻗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좌절했다. 무력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러나 준비된 자의 길은 뒤늦게라도 트여지는 법일까.
서 대표가 SK이노베이션이라는 대기업과 연을 맺게 된 것은 일대의 행운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일찌감치 사회적가치(Social Value)의 잠재성을 지닌 스타트업을 육성하는데 관심을 가져온 기업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9년 사회적가치를 표방하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SV2 임팩트 파트너링 모델’을 4곳 선정했는데, 그중 한곳이 바로 오투엠이다. 마스크산업의 사회적가치에 주목해온 이곳은 기술은 좋으나 투자여력이 없어 일부 산업현장과 환경미화원을 대상으로 한 OEM생산에 그치고 있다는 오투엠 소식을 접하곤 오투엠에 시선을 준 것이다. SK이노베이션 직원 250여명은 약 200만원씩을 모아 코리아임팩트펀드(Korea Impact Fund)를 통해 오투엠에 투자했다. 오투엠은 이 투자금으로 마스크 자동화설비를 구축할 수 있었고, 약 1년 뒤에는 본격적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이는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과 비교적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새로운 윈윈형태로 업계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러니 서 대표로선 SK이노베이션이 은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투자를 받아 마스크자동화 생산설비를 구축했고, 2020년 9월부터 본격적인 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시작일 뿐입니다.”
SK이노베이션이 고마운 것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서 대표는 오투엠을 창업할 당시 소셜벤처(Social Venture)라는 단어조차 몰랐단다. “SK이노베이션 임팩트 파트너링 투자를 받고나서 우리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이 소셜벤처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많은 선배기업들의 모범사례를 공부하고자 했고, 그런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의 영위 목적에는 이윤 외에도 더 중요한 가치, 즉 환경경영이든 가치경영이든 특정 미션을 소화하며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활동 역시 소중한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추구하는 것이 사회적 약자나 산업 노동자에게 마스크를 정상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해 진정한 사회적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서 대표 개인의 기업철학 역시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회사의 핵심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서 대표는 코로나19가 창궐하고 마스크 가격이 치솟고 품귀현상이 생길 때도 마스크가 없으면 힘든 직업군과 노인 대상으로 저가에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시했다. 단순히 물건만 파는 제조업 장사꾼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고객의 불편한 점을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의미있는 기업이 되고 싶어서였다.
“저는 ‘건강한 호흡’을 파는게 우리의 업(業)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의 미션이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하는 직업군, 호흡기계질환자 등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건강한 호흡을 할 수 있도록 마스크를 보급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입니다. 건강한 호흡을 제공하고, 만족과 행복을 파는 것, 그게 오투엠의 포기할 수 없는 경영방향이죠.”
서 대표가 유쾌한반란이 진행하는 소셜임팩트(Social Impact)포럼 회원사로 참여한 것도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추구하고, 사회적가치를 표방하는 포럼이라는 데 공감해서다. 좋은 기술력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널리 쓰이길 바라면서도 회사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는 회원사끼리 정보와 철학을 공유하는 게 너무 좋단다. 거기서 선배격인 많은 사회적 기업의 자문을 구하고, 같이 공부하는 게 즐겁기만 하다.
“하트 투 하트(Heart to Heart)라는 말이 있죠. 세상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죠. 오투엠은 물건을 만들어 단순히 파는 것 이상으로 고객의 마음을 살피고 마음을 전달한다고 여기며 정성을 다해 제품을 생산할 겁니다. 진심을 다한 우리 제품이 소비자에 잘 전달돼서 건강한 에너지가 가득 담긴 마스크로 온세상이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원하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서 대표 인생에 영향을 준 책도 있다. 얼마전 더 해빙(The Having)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부(富)와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새삼 다지는 계기가 됐다. 돈을 쓰는 순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하고 돈을 벌어다주는 세상에 감사하고 그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줄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책 내용이 가슴을 후벼팠다. 돈을 버는 것, 돈을 쓰는 것, 이 모두 다 긍정과 행복에너지로 만들면 사회 전체도 밝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확고한 사회적기업 경영철학으로 무장하게 된 것도 더 해빙을 읽은 후였다.
해외수출에 대한 열망은 그의 또다른 도전 방향이다. 국내 유일의 산소발생마스크는 자동화 생산설비 구축후 일반 시장판매로 확대됐지만, 수출물량은 부족해 투자를 준비 중이란다. 앞으로는 수출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존 마스크 시장의 60~70% 이상을 해외브랜드가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언젠가 ‘메이드 인 코리아’ 마스크라고 하면 오투엠 마스크를 떠올릴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창업을 하고 최고경영자(CEO)가 될 줄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말이 돌아온다. 운동을 좋아해 단증이 13단이란다. 태권도 3단, 대한합기도 각 3단, 한국합기도 각 3단, 화랑도 2단 등이다. 운동선수가 되겠구나, 막연히 그렇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단다. 그러고보니 서 대표의 기골이 단단해보인다. 눈도 부리부리한게 호방하게 생겼다.
“혹시 학폭?”하고 물었더니 웃으며 손을 젓는다. “일진은 아니고요. 다른 학교 짱이 싸움을 걸어오면 마다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약한 아이들 괴롭힌 게 아니라, 우리 학교를 지키는 일은 했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언젠가 창업을 하고 정부과제(입찰)를 따내기 위한 프리젠테이션(PT)를 하고 나오는데, 심사위원중 한명이 “학창시절 학폭 피해를 당할 뻔 했는데, 그때 당신이 도와줘 고마웠다”고 인사를 건네더란다. 그때 일이 자세히 기억 나지는 않았지만, ‘세상 착하게 살고 볼일’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것 때문에 정부과제에 선정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과제를 수행하게 됐고, 그날 만난 그 친구와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다.
인터뷰가 끝날 시점, 마무리 말을 부탁했더니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공장도 없던 시절, 기술 하나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밥먹듯 퇴짜를 맞던 시절,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용(龍)된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지난날의 고생과 초심을 잃지 않고 부지런히 사회적 약자 등에게 ‘행복 마스크’를 공급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그러고보니 서 대표는 불혹(不惑)의 나이다. 옛날로 따지면 나이 40이면 완전 어른이고 ‘세상에 혹하지 않는’ 불혹이다 뭣이다 말할 수 있는 때지만, 100세 시대인 요즘에는 어디 나잇살 명함이라도 낼 수 있는 때인가. 어른이 보기엔 여전히 청년인 나이 40은 그리고 욕심을 앞세우기 쉬운 시절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최소한 재물에 혹하지 않고 사회적기업과 가치경영에 확고한 신념을 보이는 그를 보니 그냥 듬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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